코바야시 사다오
(小林貞夫, 일본기독교단 상의원, 복음주의연합회 상임위원)
1. 집필동기
(필자가 '교단 분쟁사'에 대해 이 같은) 표제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일본기독교단 역사는 66년이다. 이중 절반 이상인 38년간은 소위 교단분쟁의 역사이다. (일본기독) 교단에 소속된 모든 교회 및 성도들은 이 문제를 결코 피해 갈수 없다.
교단이란 무엇인가. 분쟁 내용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이하에서 전개해 나갈테지만, 교단분쟁은 (일본기독) 교단에 있어서 그야말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2) 이 같은 교단분쟁에 대해 무지한 세대·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만한 세월이 경과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잊을려고 하거나 관계를 감추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발언한 것이나 행동한 것에 대해 마치 없었던 일인양 '척'하는 경향도 눈에 띄고 있다. 이를 눈감고 용서한다면 교단 형성이 제대로 될수 없다.
(3) 교단분쟁의 通史 자료는 거의 없다. 부분史에 대한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기록을 남기는데 뜻을 두고 있는 자가 있을수도 있으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교단 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동지(同志)적 집단인 복음주의교회연합(福音主義連合)에 속한 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
미흡하나마 먼저 팬을 든 연유가 여기에 있다. 계속 집필해 나갈 수 있기를 염원하며
(4) 일본기독교단 연감에는 '교단 실록'이라는 자료가 실려있다. 이 자료를 읽어보면 교단 개요를 알수 있다는 원칙 하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자료를 본다 한들 교단의 개요를 알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분쟁에 대해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교단 정상화를 위해 조직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또한 문제 제기자가 압도적으로 득세했던 20년간은 어쩔수 없이 그리할수 밖에 없었던 면도 있다.
목회 수첩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예이다. 그러나 이를 이대로 놔둬선 안된다. 시정해야 할 것은 제대로 시정함이 마땅하다.
2. 집필에 앞서
(1) 표제에 '실록'이라고 이름 붙였다. 필자는 눈으로 본바 귀로 들은바 체험한 것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또한 되도록 알기 쉽게 기록해 나가는데 역점을 두고자 한다.
독자가 읽고 이해하기 쉬운 자료가 아니라면 먼저 팬을 든 의미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염원이 바로 이 '실록'이라는 이례적 기록 가운데 들어 있다.
(2) 38년간의 분쟁 가운데 필자가 교단상의원을 역임한 기간은 19년이다. 교회를 통해서, 이전에도 다소 관여는 해 왔었으나, 실록의 주지(主旨)를 비춰볼 때 분쟁 후반부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할수 있겠다.
(3) 분쟁의 기초는 폭력이다. 폭력은 직접 체험한 사람과 간접적으로 들은 사람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생긴다. 이 부분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후대 사람들이 오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개개인의 발언도 폭력의 위압에 의해 조금씩 차이가 생긴다. 집단 및 회의의 방향도 '타협'이라는 형식으로 변질한다. 이 부분을 어떻게해서든 기록에 남기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이는 이미 문학표현의 영역에 속한 부분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을 상세히 남기고자 애쓰려 한다.
(4) 분쟁에 관여한 사람들의 호칭에 대해서는 통일시키고자 한다.
A. 문제제기자 : 분쟁을 일으킨 주역들이며, 조반파(造反派)라고도 한다. 원래 모택동(毛沢東)의 조반유리(造反有理)로부터 나왔으며, 폭력혁명도 불사한다는 운동이 교단에까지 미쳤기에 조반파(造反派)라는 표현이 보다 실체를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만 교단내 기록 등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으므로 이번 자료에서는 '문제제기자'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B. 교회파 : '복음주의교회연합' 소속 목사들, 코지마 세이지(小島誠志) · 야마키타 노부히사(山北宣久) 교단의장 지지 목사들을 이 같이 '교회파'라고 부르고자 한다. 최근엔 교헌(教憲)・교규파(教規派)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초심자에게 한마디 덧붙이자면, 문제제기자들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 강력히 싸워온 자들이 바로 이들 '교회파'이다.
C. 중간파 : A.B.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들을 '중간파'라고 부르고자 한다. 여기에는 지방의 각 교회에서 교회 형성 및 선교에 진력하느라 거의 '교단 분쟁'의 실태를 모르고 시일을 경과한 자들 및 이러한 교회들이 속한다 .
중간파 가운데에는 분쟁 내용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으나, 중간 지점에 서 있는듯한 태도를 취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채결에 있어서는 문제제기자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분쟁을 오래 끌게한 원인이 되었다. 다음 항목에서도 나오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전개 과정 가운데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3. 교단 분쟁이란
'교단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 알기 위해서는 본 원고가 끝나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윤곽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전개해 나가는 작업이 어렵다.
따라서, 교단, 분쟁, 폭력에 대해 먼저 전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A. 여기서 말하는 교단이란 일본기독교단 총회의장, 부의장, 서기 이렇게 세 직함을 뜻한다. 교단사무국과 그 책임자인 총간사. 출판국, 연금국 등의 조직. 교단총회, 상의원회, 각위원회 등을 가리킨다.
이들 기관들의 회의 및 업무 등 전반을 포함하여 교단이라 칭한다.
B. 교단과 교구와의 관계
분쟁에 관해서는 교단과 교구는 상이적이며, 교단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형태로 교구에서도 일어났었다. 이 반대 경우도 있었다.
단지 교단 후기에 접어들어서는 교구 차원에서 주장이 하나로 모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로 교구 전체가 문제제기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결과를 보인 교구도 있었다. 동북, 오우(奥羽), 교토, 하마쿠라(浜庫), 동중국(東中国), 서중국(西中国), 규슈 교구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교회파적 주장을 펼친 교구도 있다. 도쿄, 서도쿄, 동해(東海), 중부, 사국(四国) 교구 등이 이에 해당한다.
4. 폭력 = 분쟁의 핵심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교단 분쟁의 핵심은 폭력이다. 폭력에 의해 교단운영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교단분쟁을 가리켜 폭력전개의 역사라고도 환언할 수 있다.
폭력은 크게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물리적 폭력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헬멧, 대나무로 만든 장대 등으로 교단을 혼란시키는 방법이며, 때로는 교단에서 때리거나 발로 차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두번째로 교단 회의진행을 방해하는 방법이다. 가령, 의장단석을 포위한채 회의를 진행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이다. 마이크를 조작하여 정규 발언이 일절 들리지 않도록 하는 행위이다. 세번째로는 협박하는 방법이다. 발언자의 옆에 서서 욕설을 계속해서 퍼붓거나 문제제기자의 뜻에 거슬리는 발언에 대해 일제히 야유하거나 놀리는 등의 방법이다.
정신적 폭력이란 정신적 압박 및 협박을 받은 자가 기가 꺽여 자신의 견해를 굽히는 것이다. 더욱이 협박하는 자의 마음에 드는 발언을 하게 되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문제제기자를 향해 '그것도 알지만' 이라는 발언을 한다. '이신칭의는 틀렸다'라고 주장해도 이견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중간파들에 대해서는 오래토록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5. 교단 경과표
이 교단 분쟁에 대해 처음 접하는 자들을 위해, 경과표로 정리해 보았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악(죄)란, 하나님 보다도 인간의 생각(정치, 문화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대
| 교단 의장 |
어떤 양상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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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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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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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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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 1969 |
스즈키 마사히사
(鈴木正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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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뜻이 실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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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책고백(戦責告白), 만박참가(万博参加) 둘다 내는 방법이 잘못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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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폭력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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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 ~ 1971 |
이이 키요시
(飯 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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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싹트기 시작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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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에서 결정난 사안을 의장이 어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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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의해 곤욕을 준 사건이 발생했음. 피를 흘리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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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 ~ 1973 |
요시다미치오(吉田満穂)
시마무라 키카쿠(島村亀鶴) |
시종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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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안을 제안해도 아무런 결정이 안 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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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제안은 규탄당했고, 강제로 철회당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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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 ~ 1978 |
토다 이스케
(戸田伊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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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지향하고 폭력을 긍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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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정전, 이신득이, 신앙고백을 부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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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예찬했으며, 이것이 회의의 많은 교훈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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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 ~ 1988 |
우시로쿠 토시오
(後宮俊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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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정착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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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자가 모든 것을 이끌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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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발언에 대해서는 반드시 폭력에 의한 방해가 뒤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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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 ~ 1992 |
쯔지 노부미치
(辻 宣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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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게 이용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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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단 한사람만이 전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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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협박으로 의사(사안)이 결정되고 문제제기자들의 의도대로 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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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 1996 |
하라 타다카즈
(原 忠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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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으로 악이 증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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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阪神)대지진 대응이 엉망진창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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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칼) 사건이 발생, 교단에 대한 신뢰가 추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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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 2002 |
코지마 세이지
(小島誠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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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물리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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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추진에 대한 결의도 몇 가지 사항이 결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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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가해져도 굴하지 않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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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 |
야마키타 노부히사
(山北宣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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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뜻을 지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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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헌(教憲) 및 교규(教規)가 교단의 대전제임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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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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